
2023년 개봉했지만 저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뉴노멀'입니다. 최지우, 이유미, 하다인 같은 인지도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고 무엇보다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 작품인데도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 3월 넷플릭스에 등록되면서 대한민국 영화 TOP10에 진입했고, 저 역시 "신작인가?" 하는 궁금함에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보고 나서 느낀 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우리 일상에 스며든 섬뜩함이었습니다.
옴니버스 구조가 만드는 6개의 일상 공포
영화 '뉴노멀'은 옴니버스 형식(Omnibus Format)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옴니버스란 하나의 주제 아래 여러 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를 묶어 놓은 형식을 뜻합니다. 이 영화는 총 6개의 챕터로 나뉘며, 각 챕터마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챕터 제목도 특이한데 '엠(M)', '옳은 일을 해라', '드레스드 투 킬', '지금 만나러 갑니다', '피핑 톰', '개 같은 내 인생' 등 고전 영화 제목을 차용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각 챕터가 철저히 현대 사회의 공포를 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첫 번째 챕터 '엠'에서는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검침원이라며 들어온 남성이 등장합니다. 최지우 배우가 연기한 현정은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경계하고, 관객인 저 역시 "이 남자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연쇄살인 뉴스가 흐르는 배경 속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은 영화가 아니라 뉴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을 줬습니다.
다른 챕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의점 알바생이 매일 진상 손님을 대하며 쌓이는 분노, 데이트 앱으로 만난 상대가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는 순간, 휠체어 탄 할머니를 도와주려다 이상한 건물로 끌려가는 중학생의 이야기까지.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지만 '일상 속 공포'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됩니다. 저는 특히 정동원 배우가 나온 챕터가 인상적이었는데, 선의로 시작한 행동이 어떻게 위협으로 바뀌는지 보여주는 대목에서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넷플릭스 TOP10 진입, 그런데 흥행은 아쉬웠던 이유
영화는 2023년 11월 1일 개봉했지만 박스오피스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누적 관객 수는 약 10만 명 수준에 그쳤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정범식 감독의 전작 '곤지암'이 268만 명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옴니버스 형식 특유의 한계가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러닝타임 112분 안에 6개의 이야기를 담아야 했습니다. 당연히 각 에피소드당 평균 18분 정도밖에 할애할 수 없었고, 인물의 감정선이나 사건의 배경을 깊이 파고들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도 처음 볼 때 "어? 벌써 끝나?" 하는 아쉬움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특히 최지우 배우의 챕터는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을 충분히 소화할 시간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개연성보다는 속도감을 택한 구조라고 할까요.
하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극장에서는 외면받았지만 OTT 플랫폼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데 TOP10에 있네?"라는 호기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생했고, 저 역시 그런 경로로 이 영화를 접했습니다. 짧은 러닝타임은 오히려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했고, 각 챕터가 독립적이라 중간에 끊어 봐도 무방하다는 점도 OTT 시청 패턴과 잘 맞았습니다. 영화가 재평가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공포의 본질은 귀신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뉴노멀'이 무서운 건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공포는 전부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검침원으로 위장한 남성,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는 데이트 상대, 편의점에서 만 원짜리로 시비를 거는 손님, 스토킹 하는 이웃, 선의를 가장한 함정까지. 이 모든 상황은 제가 뉴스에서 본 적 있거나, 주변에서 들은 적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특히 영화 중간에 나오는 뉴스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잇따라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이건 영화 속 가상의 뉴스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접하는 뉴스와 너무 흡사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사회는 무차별 범죄, 스토킹, 데이트 폭력 같은 소식에 무뎌졌습니다. 처음엔 충격적이었지만 이제는 "또?"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일상화됐죠. 저 역시 그런 뉴스를 볼 때 "내 일이 아니니까" 하고 넘기곤 했는데, 이 영화는 그게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늦은 밤 집으로 걸어갈 때 종종 불안함을 느낍니다. 누가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으면 걸음이 빨라지고, 일부러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멈춰서서 그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이어폰도 절대 끼지 않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죠. 영화 '뉴노멀'은 바로 이런 일상의 불안을 포착했습니다. 공포영화가 주는 무서움이 아니라,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이 영화 속에 그대로 담긴 겁니다.
영화는 "뉴노멀 시대"라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6월에 눈이 내리는 이상기후처럼, 이상한 일이 일상이 된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섯 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를 마주하고, 어떤 이는 살아남고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답이 없다는 게 더 무서웠습니다. 선의가 위협이 되고, 무관심이 자기 방어가 되는 세상. 영화는 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뉴노멀'은 정범식 감독이 일본 작품 '토리하다'와 실제 사건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입니다.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블랙 코미디와 로맨스 요소까지 섞여 있어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되지 않고, 장르가 오가며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각 챕터 제목이 고전 영화 제목이라는 점도 재미있는 장치인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부분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 에피소드가 짧아서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고,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 속 공포"라는 주제를 이만큼 날것으로 담아낸 한국 영화는 드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시리즈로 이어진다는 점이 기대됩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한국형 호러 세계관이 어떻게 확장될지 궁금합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시거나, 요즘 사회 분위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