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이 평범한 시민인데 알고 보니 전직 특수요원이라는 설정, 이미 식상하지 않나요? 저는 솔직히 2015년 '더 이퀄라이저'를 처음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덴젤 워싱턴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평범함의 강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2014년 개봉했지만 국내에는 2015년에 들어왔고, '존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한 작품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 숨은 고수, 그 설정의 힘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의 일상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죽은 아내가 남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100권'을 읽는 것이 삶의 전부인 남자. 불면증 때문에 밤마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그곳에서 만난 어린 콜걸 테리와 대화를 나누는 게 하루의 전부입니다.
여기서 '콜걸(call girl)'이란 성매매 업소에 소속되어 고객의 요청을 받아 특정 장소로 이동하여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영화 속 테리는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10대 소녀로 그려지는데, 주인공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오랜만에 인간적인 교감을 나눕니다.
저는 이 설정을 보면서 한국 영화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원빈이 연기한 주인공 역시 조용히 살아가던 전직 요원이 이웃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였죠. '더 이퀄라이저'는 스토리 구조상 '존윅'보다 오히려 '아저씨'에 더 가깝습니다. 물론 원빈만큼 멋진 외모는 아니지만, 덴젤 워싱턴의 액션 연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나도 호신술 정도는 배워야 하나?"였습니다. 주인공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자신과 주변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설정이 묘하게 자극적이었습니다. 물론 타인을 괴롭히자는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한 순간에 내 몸 하나,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 정도는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액션 장면과 악당의 패턴, 그 아이러니
'더 이퀄라이저'의 액션 장면은 시원시원합니다. '존윅' 시리즈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덴젤 워싱턴 특유의 침착하고 계산된 움직임이 돋보입니다. 특히 마트 전체가 정전된 상황에서 인질들을 구출하고 악당들을 하나씩 제압하는 장면은 제가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본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매번 궁금했던 건, 왜 악당들은 항상 허세를 부리다가 죽느냐는 겁니다.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상대가 찾아왔는데, 주머니에 총 몇 자루 있고 돈 좀 있다고 해서 무시하다가 결국 총알 몇 방에 맞아 죽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이건 좀 인위적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여기서 '인위적(artificial)'이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나 설정을 뜻합니다. 영화 속 악당들의 행동 패턴이 지나치게 예측 가능하고 반복적이라는 점에서 인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악당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사무실까지 찾아온 사람이 총도 무술도 모를 것 같은 평범한 중년 남자인데, 그가 당당하게 용건을 말하면 무시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도 계속 드는 생각은, "저 정도로 사무실까지 찾아온 사람이면 좀 경계해야 하는 거 아닌가?"였습니다. 제 가슴이 답답해져서 마치 고구마를 백 개는 먹은 것처럼 가슴을 탁탁 쳐야 했습니다.
주인공은 러시아 마피아 조직을 상대로 단독으로 전쟁을 벌입니다. 돈세탁(money laundering) 사업을 돕는 부패 경찰을 통해 조직의 불법 자금 창고를 털고, 정계 인사들과 연루된 증거를 FBI에 넘기며 조직을 압박합니다. 여기서 '돈세탁'이란 불법적으로 얻은 자금의 출처를 감추기 위해 합법적인 경로를 거친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러시아 마피아가 성매매와 마약 거래로 번 돈을 정상적인 사업 수익처럼 보이게 만드는 과정이 묘사됩니다(출처: 금융위원회).
현실감과 판타지 사이, 그럼에도 추천하는 이유
영화를 본 제 최종 생각을 정리하자면, '더 이퀄라이저'는 충분히 재밌는 요소가 많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강인한 전투 능력을 숨기고 있다는 설정,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 숨은 고수였다는 반전, 이런 요소들은 관객의 대리만족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미국 액션 영화 평론가들은 이러한 '평범한 영웅(ordinary hero)' 서사가 관객에게 강력한 감정적 연결을 만들어낸다고 분석합니다. 왜냐하면 관객 스스로도 "나도 저런 능력이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출처: American Film Institute). 한국 영화 '아저씨' 역시 비슷한 설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하는 보편적인 매력인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는 취향과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퀄라이저'는 접근하기 쉬운 영화이면서도, 가볍게 생각 없이 즐기기에 충분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핵심 매력을 정리하자면:
- 덴젤 워싱턴의 절제된 연기와 액션
- 평범한 일상과 숨겨진 능력의 대비
- 약자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영웅 서사
저는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주말에 호신술 학원을 알아봤습니다. 실제로 등록하진 않았지만요. 그만큼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감정적 자극이 강렬했다는 뜻입니다. '존윅'처럼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화려한 액션은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밌습니다. 특히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봐도 후회하지 않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