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윅의 세계관을 이어받은 스핀오프 영화 '발레리나'가 2025년 개봉했습니다. 키아누 리브스와 이언 맥셰인이 카메오로 출연하며 전작의 향수를 자극하는데, 저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단순한 팬심을 넘어선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여성 킬러의 복수 서사를 발레리나라는 독특한 소재와 엮은 시도가 상당히 흥미로웠거든요.
존윅 세계관 속 새로운 복수 서사,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발레리나는 존윅 유니버스(John Wick Universe)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존윅 유니버스란 암살자들의 독자적인 규칙과 조직, 그리고 컨티넨탈 호텔이라는 중립 지대로 구성된 일종의 언더그라운드 세계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 세계관을 배경으로 주인공 이브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암살자 조직 루스카 로마에서 훈련받는 과정을 그립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에 "또 복수물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복수 서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브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컬트 조직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아버지의 손에 새겨진 조직 문양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아버지 역시 과거 그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반전입니다. 이브는 뉴욕 컨티넨탈의 오너 윈스턴의 도움으로 루스카 로마에 들어가게 되고, 발레리나이자 암살자로 이중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제가 주목한 건 이브의 훈련 과정입니다. 왜소한 체격 때문에 힘으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없었던 이브가 임기응변과 유연성을 활용한 전투 기술을 개발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발레의 움직임이 암살 기술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게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캐릭터의 생존 전략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등에 조직의 상징을 새기는 장면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된 이브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컬트 조직과의 대결 구조
영화의 핵심 갈등은 이브와 컬트 조직 간의 대결입니다. 이브가 임무 복귀 중 어린 시절 아버지를 죽인 것과 똑같은 문양을 가진 암살자들에게 습격당하면서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되는데요. 루스카 로마의 수장은 컬트 조직에 대한 추적을 경고하지만, 이브는 윈스턴의 도움을 받아 컬트 조직원 다니엘 파인의 행방을 추적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액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투 씬(Combat Scene)의 현실감입니다. 전투 씬이란 단순히 화려한 동작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전략과 환경 활용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장면을 말합니다. 발레리나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프라하 무기상 습격 장면에서 이브가 제한된 공간과 즉석에서 구한 무기만으로 컬트 조직원들을 상대하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연출되었습니다.
컬트 조직의 은신처인 마을에 잠입한 이브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준 오르골과 똑같은 물건을 발견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는데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의 과거와 이브의 현재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브는 컬트에게 붙잡히고, 의장이 자신의 친언니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언니는 아버지가 조직을 배신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브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평범한 삶을 주려 했을 뿐이라고 반박합니다. 이 대립 구조가 흥미로웠던 건,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가족 간의 갈등이 복수극에 깊이를 더한 셈이죠.
최종 대결과 발레리나만의 정체성 확립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컬트 조직 마을에서 벌어지는 전면전입니다. 의장이 루스카 로마 수장에게 자정까지 이브를 막지 않으면 조직원 전부를 제거하겠다고 협박하면서 긴박한 시간 제한이 설정되는데요. 이때 존윅 시리즈의 전설적인 킬러 존 윅이 직접 마을에 도착해 이브에게 자정까지 복수할 시간을 주는 장면은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 액션 시퀀스에서 영화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고 봅니다. 이브가 적들을 처리하며 컬트의 무기고를 발견하고, 대량의 화기를 동원해 조직원들을 소탕하는 과정이 존윅 시리즈 특유의 건 푸(Gun-Fu) 스타일로 연출됩니다. 건 푸란 총기 사격과 무술 동작을 결합한 액션 기법으로, 존윅 시리즈를 대표하는 시각적 특징입니다. 발레리나는 여기에 발레의 유연한 움직임을 더해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의장과의 최종 대결에서 이브가 승리하고 엘라를 구출하는 결말은 예상 가능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액션 연출의 완성도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특히 존 윅이 이브를 지켜주며 자신도 컬트의 목표물이 되는 설정은, 이 세계관 안에서 복수와 연대라는 두 가지 테마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발레리나라는 소재 자체가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킬러와 발레리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건, 발레 역시 몸으로 감정과 서사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점입니다. 킬러 또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 없지만 행동으로 목적을 달성한다는 면에서, 두 정체성은 '침묵 속 표현'이라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영화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시각적으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존윅 팬이라면 반가운 요소들이 많고,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작품입니다. 다만 존윅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일부 설정이 낯설 수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최소한 존윅 1편이라도 먼저 보고 오시길 추천합니다. 발레리나는 독립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존윅 세계관의 확장판이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있으면 영화를 더 깊이 즐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