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마켓"이 넷플릭스에 올라온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불과 개봉 3개월 만에 OTT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겁니다. 저는 콘크리트 유니버스 시리즈를 모두 본 입장에서 이 작품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생존 시장의 경제 시스템과 개연성 문제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세 번째 작품인 "콘크리트마켓"은 대지진 이후 황궁 아파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생존 시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통조림이 화폐(currency)로 기능한다는 설정입니다. 화폐란 경제학적으로 교환의 매개, 가치의 척도, 가치의 저장 수단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하는데, 재난 상황에서 인프라가 붕괴되면 기존 금융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됩니다(출처: 한국은행 경제교육).
제가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부분은 이 설정이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6년 전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기억상실 증상이 오면서 차에서 뛰쳐나와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난 상황에서는 누구나 당황하고, 그 혼란을 넘어서면 생존을 위한 질서가 다시 만들어집니다. 영화 속에서 박상용 회장이 물, 약품 같은 생존 자원을 독점하며 상납금 시스템을 만드는 모습은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주인공 희로가 갑자기 황궁 마켓에 등장하는 개연성이 다소 부족했습니다. 개연성(plausibility)이란 서사에서 사건이나 행동이 논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정도를 의미하는데, 희로가 왜 그곳에 왔는지, 어떻게 그런 대담한 성격이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먼저 본 관객이라면 이런 부분이 더 아쉽게 느껴질 겁니다. 전작에서는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영탁이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줬거든요. 저는 당시 그 영화를 보며 실제 재난 상황에서 저런 사람이 나타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반면 "콘크리트마켓"은 박상용이 어떻게 절대 권력자가 되었는지 세부적인 서사가 생략되어 있어서 단순히 악역으로만 소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는 희로가 친구 세희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김태진을 이용하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희로는 물건 사재기와 판매로 태진의 신뢰를 얻고, 결국 박상용 회장을 끌어내리는 계획을 실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805호 여성들과의 연대, 물 오염 작전, 독살 시도 등 여러 복선이 등장하지만, 저는 이 복수 동기가 단순히 친구의 죽음과 친구 동생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납득되기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홍경의 새로운 시도와 유니버스의 독립성
영화 "청설"에서 풋풋하고 감성적인 역할을 맡았던 홍경 배우가 "콘크리트마켓"에서는 생존을 위해 모든 걸 던지는 밑바닥 인생을 연기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배우가 얼굴에 묘한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에서도 나쁜 역할이지만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표정을 짓거든요.
실제로 영화를 보니 홍경의 연기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태진 역할은 박상용 회장을 아버지처럼 따르다가 결국 배신당하는 인물인데, 이 캐릭터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청년으로 느껴지는 건 홍경의 연기 덕분입니다.
콘크리트 유니버스는 총 세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병헌, 박보영, 박서준이 출연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이고, 두 번째는 마동석이 나온 "황야"입니다. 세 번째가 바로 "콘크리트마켓"이죠. 이 시리즈는 유니버스(universe)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각 작품이 독립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니버스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작품을 의미하는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캐릭터나 사건이 연결되는 것과는 다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제가 세 작품을 모두 본 결론은 이렇습니다. 콘크리트 유니버스는 하나의 프랜차이즈(franchise)로 묶여 있지만, 각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다룹니다. 프랜차이즈란 동일한 브랜드나 세계관을 공유하며 확장되는 시리즈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대지진 이후의 한국"이라는 배경만 공통적으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안 봤다고 해서 "콘크리트마켓"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다만 전작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외부인 차단과 내부 갈등, 그리고 권력의 부패를 입체적으로 다뤘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며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봉사 활동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재난 상황에서도 인류애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직접 경험했거든요. 반면 "콘크리트마켓"은 무대가 작고 인물도 적으며, 갈등이 단순화되어 있어서 스케일 면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희로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재난 영화는 절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엔딩이 다소 급하게 느껴졌습니다. 박상용 패거리를 제거하는 과정이 독을 탄 물 하나로 너무 간단하게 해결되거든요.
영화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통조림 화폐 시스템이 재난 경제를 상징하며 현실적인 설정
- 희로의 복수 서사는 대담하지만 개연성이 부족
- 홍경의 연기 변신은 인상적이나 캐릭터 깊이는 아쉬움
- 콘크리트 유니버스는 세계관만 공유하며 각 작품은 독립적
"콘크리트마켓"은 나쁘지 않은 영화지만,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솔직한 생각입니다. 넷플릭스에서 가볍게 보기엔 괜찮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완성도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폐허 속에서도 남아있는 인간다움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서사의 깊이와 긴장감이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가 어떻게 확장될지는 모르겠지만, 각 작품이 독립적이라는 점을 알고 보면 실망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