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 영화를 보면서 "저 선수는 대체 왜 저렇게 가벼운 옷을 입고 뛰는 거지?" 같은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직접 러닝크루에서 활동하면서 그 이유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처음에 면티셔츠를 입고 달렸다가 땀에 젖은 옷 무게 때문에 중간에 벗어버리고 싶을 정도였거든요. 그런 제 경험 때문인지 넷플릭스에 새로 등록된 영화 '1947 보스턴'을 보면서 주인공들의 달리기가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습니다.
러닝 붐 시대에 개봉한 마라톤 영화
영화 '1947 보스턴'은 2023년에 개봉했는데, 사실 원래는 코로나 이전에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개봉이 미뤄지면서 오히려 절묘한 타이밍을 맞이하게 되었죠. 코로나 시기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러닝 붐(Running Boom)'이라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러닝 붐이란 달리기 운동이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하는 사회 현상을 의미합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실내 운동 시설이 문을 닫았지만, 야외에서 혼자 달리는 것만큼은 제한받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 시기에 러닝크루에 가입했는데, 집에만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달리기는 정말 큰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접근성도 한몫했고요.
코로나가 잦아들면서 러닝크루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마라톤 대회 참가도 늘어났습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전국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자 수가 전년 대비 약 40% 증가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저도 크루원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하면서 완주의 기쁨을 나눴는데, 그 경험이 있었기에 영화 속 선수들의 모습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출한 강제규 감독의 신작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더욱 몰입감이 뛰어나죠. 하정우가 손기정 코치 역을, 임시완이 서윤복 선수 역을 맡았는데 두 배우 모두 실제 인물과의 싱크로율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손기정과 서윤복, 조국을 위해 달린 마라토너들
영화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당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지만, 일제강점기였기에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비극을 겪었죠. 시상대에 서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심정이 영화 속에서 절절하게 그려집니다.
해방 후 1947년, 손기정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 초청장을 받아옵니다. 당시 한국은 아직 국제 대회 참가 자격이 없는 상태였는데, 이 대회가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뛸 수 있는 기회였던 거죠. 그리고 그는 냉면 배달을 하며 달리던 서윤복이라는 젊은 선수를 발견합니다.
서윤복 선수의 등장 장면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손기정 세계 제패 10주년 기념 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메달보다 생계가 더 중요한 현실에 처해 있었습니다. 저도 러닝크루 활동 초기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는데요. 취미로 달리는 것과 선수로 달리는 것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영화를 보며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VO2 Max(최대산소섭취량)라는 개념이 간접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선수가 운동 중 최대로 섭취할 수 있는 산소량을 의미하며 지구력의 핵심 지표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고지대 훈련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 수치를 높이기 위함이죠. 영화 속 훈련 장면들이 단순히 열심히 달리는 모습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실제 마라톤 훈련 프로그램의 과학적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제작진은 이봉주, 고 함기용, 권은주 등 실제 마라톤 선수들의 자문을 받아 경기 장면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고 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덕분에 42.195km를 달리는 선수들의 페이스 조절, 호흡법, 자세 변화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실화가 주는 감동과 영화적 한계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곧바로 서윤복 선수가 실제 인물인지 검색해봤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극적인 이야기였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1947 보스턴'은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교육적 가치도 상당합니다.
영화의 핵심 갈등은 보스턴 마라톤 출전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재정 보증금 문제로 출전이 좌절될 위기를 겪고, 극적으로 해결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달고 뛰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죠. 손기정은 과거 일장기를 달고 뛰었던 수모를 자신의 제자에게 되풀이하게 할 수 없어 출전을 포기하려 합니다.
하지만 서윤복은 달랐습니다. "조선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어떤 국기를 달든 자신은 조선인으로 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입니다. 이 장면에서 두 세대의 마라토너가 보여주는 신념의 충돌과 화해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실화 기반 영화의 숙명인지, 영화적 각색 과정에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중반부 훈련 장면이 조금 길게 느껴졌거든요. 실제 마라톤의 고통을 표현하려다 보니 관객도 함께 지치는 느낌이 들었달까요. 하지만 넷플릭스로 다시 보니 그 장면들이 오히려 클라이맥스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정우와 임시완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습니다. 특히 임시완 배우는 체지방 6%까지 감량하며 실제 마라토너의 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노력이 화면에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실제 손기정·서윤복 선수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두 배우가 얼마나 철저하게 역할에 몰입했는지 알 수 있죠.
영화를 보며 제가 러닝크루에서 경험했던 순간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목표 거리를 달리고 나서 주저앉았던 그 순간, 크루원들과 서로 격려하며 완주했던 기억들이요. 마라톤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걸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최신작으로 등록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접하고 있는데요. 러닝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혹은 우리나라 마라톤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번 시청해보시길 권합니다. 실화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감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달려나간 선배 마라토너들의 열정이 지금 우리에게도 큰 영감을 줄 거라 확신합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음 러닝 일정에 더 설렘을 느끼게 되었으니까요.